오래 묵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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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얌전한 척하는 친구가 주말에 시간 있냐고 물어보더니 불쑥 ‘에코투어’라는 게 있는데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얼핏 들어본 적이 있지만 딱히, 움직일 구실이 없어 망설이던 참에 뭔가 먼저 나서서 하자고 적극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친구의 드문 권유이기도 해서 바로 승낙을 하고 에코투어에 첫 참가하게 되었다. 코스가 산록도로부터 시작해 오름 몇 개를 오르고 다시 걷는 길. 조금 많이 걸을 수 있다고 듣긴 했지만 원래 오름이나 산행을 즐기는 편이라 전체적으로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5월이라 무덥지도 않고 서늘한 바람이 더해져 걷기 딱 좋은 날씨. 가벼운 마음으로 열안지오름을 걸었다. 평소 혼자 다니는 오름에, 길잡이의 설명이 더해지니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안 다녀본 오름이 꽤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름을 내려와서 아직 덜 여문 보리밭길을 걷는데 가만히 보니까 얼마 전에 다녀온 곳이었다. 그러나 코스 방향이 정반대였다. 전에는 보리밭길 위에서 제주시 전경을 보면서 내려왔는데 이번엔 거꾸로 밑에서 위쪽으로 보리밭길을 따라 올라가는 코스. 익숙하면서도 낯선 반가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친구를 붙잡고 며칠 전에 걸었던 곳인데 이렇게 걸으니 느낌이 또 다르다며 중간중간 증거사진을 남겼다. 탐방객들 대부분이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함께 어울려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담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 여성분이 사진을 부탁하려고 망설이길래 먼저 찍어주겠다고 하면서 포즈를 잡아 달라고 청하자 제자리에서 껑충 뛰는 등 여러 포즈를 잡길래 꽤 괜찮은 사진도 건진 듯했다. 홀로 혹은 친구와 함께, 그리고 여러 사람과 어울려 다니는 색다른 느낌이랄까. 다음 코스인 검은오름의 정상에서 본 풍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억새가 자라면 잘 다닐 수 없는 곳이고, 눈이 오는 계절이면 더 예쁘다는 설명에 가을, 겨울에도 한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역시나 아는 눈치. 오름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바지가 찢어져 속살이 드러나는 사고를 겪고, 돌담을 비롯한 장애물들을 넘어가고, 평소 다니지 않는 새로운 길을 찾고, 풀들이 뒤덮인 숲을 헤치고, 특히 목장길을 따라 쭉 올라가는 일행들의 모습은 마치 피난민을 연상케 했다. 노리손이오름을 마지막으로 오후가 좀 넘어 일정을 마무리했다. 원래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계절마다 다른 제주의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어 제주에 내려왔고, 에코투어를 권한 친구 역시 제주서 만난 육지 사람이다. 내가 느끼는 제주의 매력이 어느 한순간이 아니라 사계절 오래 봐야 더욱 알게 되는 것처럼 친구 역시 뜻 그래도 오래 묵어야 더 친해지고 아는 게 아닌 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에코투어의 느낌이 그랬다. 나름대로 제주 곳곳을 다닌다고 생각했음에도 심지어 가봤던 곳임에도 새롭게 느껴지는 코스와 일정이 신기하면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제주의 속살을 보여주는 투어이자 여러 번 가도 질리지 않는 그런느낌, 에코투어를 권해 준 친구에게 다음에도 같이 가자고 말을 하면서 ‘오래 묵을수록 좋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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